안녕하세요!

최강의 성동구 논술!

"국어의 키, 독서클럽"입니다 :)

오늘은 '아빠가 아이에게 들려주는 리터러시' 라는

주제로 책 줄거리를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사건의 개요를 살피면서 함께 이야기의 포인트를 짚어볼 건데요~!

오늘은 책 ​「신데렐라」​​ 입니다 !

그러면 지금부터 같이 읽어봅시다 !

 

 

1. 꾸미기... 거짓된 모습, 의문에 대한 답 세 가지

 

화장은 약자가 하는 코스프레입니다. 강한 자는 화장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꾸미기도 할 필요가 없고 있는 그대로 상대에게 보여도 손해될 것이 없습니다.

 

반면 약자는 강자에게 밉보이지 않기 위해 자기를 최대한 잘 드러내야 하는 늘 아쉬운 존재입니다. 힘 있는 자로부터 경제적인 이득이든 내가 얻고자 하는 무언가를 하루하루 얻어야 하는 입장입니다.

또는 내가 호감 있고 관심이 있는 상대, 누군가 잘 보이고 싶은 대상이 있다는 뜻이죠. 집에서는 화장을 하지 않습니다. 왜? 그러한 대상이 없기 때문이죠.

 

신데렐라는 무도회장에 가고 싶다고 당당히 요술쟁이 할머니에게 말을 합니다. 요술쟁이는 도와주겠다고 하고 호박을 황금 마차로 쥐 여섯 마리는 늠름한 말로 그리고 도마뱀은 여섯 명의 하인이 되었습니다. 신데렐라는 엉뚱하게 끌려와서 변신을 한 쥐 여섯 마리와 도마뱀을 왜 그렇게 하셨냐고 요술쟁이에게 물어봤어야 합니다. 부당한 것이라고 그리고 거짓된 모습이라고 얘기를 했어야 합니다.

 

의문 3 가지

1. 그냥 입고 있던 옷을 단정히 하고 가면 안 되었을까요?

 

- 네 안 됩니다. 신데렐라는 꼭 왕자에게 선택을 당해서 새엄마와 언니들의 구박 받는 현실에서 탈출 했어야 하니까요.

 

 

2. 꼭 화려한 황금마차와 늠름한 말 그리고 하인이 필요할까요?

- 처음 주목을 받기 위해서 일수도 있구요. 집에서 궁전까지 멀면... 힘들잖아요. 그리고 땀 흘리고 클럽 아니 왕궁 파티 가는 건 아무래도 선택 받기 힘들 수도 있어요.

 

3. 누구에게 잘 보이려는 걸까요?

- 당연히 왕자이죠. 자신의 운명을 바꿔줄 대상이니까요.

2. 그 남자와의 만남

 

이후 왕자와의 만남에서 “공주님, 저와 함께 춤을 추시겠습니까?”의 답변에 “네. 왕자님.”이라고 하고 평소에 갈고 닦았던(?) 춤을 추었습니다. 동화라도 자신의 본모습, 아이덴티티까지 속여가면서 상대와의 첫 만남을 한다는 것은 부적절하지 않을까합니다.

 

꾸미기 거짓된 모습의 정점이 그 시대에는 화려한 파티에서 공주에 버금가는 치장으로 자신을 한껏 드러내려고 하는 약하디 약한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왜냐하면 보다 나은 강자에게 선택을 받아야 하니까요, 그러한 점에서 보면 지금 현대사회가 그래도 낫습니다. 자기의 당당한 모습으로 세상을 향해 도전하고 맞서는 분들이 있으니까요.

 

 

그러면 신데렐라는 누구에게 잘 보이고 싶었을까요? 당연히 자기 나라의 왕자였습니다. 다른 대상은 안중에(작가가 그랬을지도 모르지만)없었죠. 앞으로의 창창한 앞날을 위해 가장 신분이 높은 왕자와의 베팅 승부는 결과적으로 신데렐라의 인생역전이 된 것입니다.

 

 

그 한순간을 위해 신데렐라는 큰 승부를 건 비장한 춤일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왕자가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면 아니 그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면 자기는 다시 이름 그래도 신데렐라의 삶을 다시 살아야 하니까요. 콩쥐는 상황이 좀 달랐습니다. 누구에게 잘 보일 필요가 없는(?) 외갓집 잔치 (다른 이본에서는 구박을 당하다 엄마와 만나게 된다는 내용도 있음)에 가고자 할 따름입니다.

 

 

거짓된 모습이나 꾸미기는 당연히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요술쟁이 할머니와 비교되는 선녀가 등장해서 직접 짠 하얀 천을 비단옷 그리고 댕기로 짚신을 꽃신으로 바꾸었습니다. 그 꽃신을 외갓집 가는 길에 허둥대다 냇가에 빠트리고 그것을 고을 원님이 보게 되고 결국 결혼까지 이어집니다.

 

 

한국 고전소설의 특징인 의도하지 않는 우연적 사건 전개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였을 뿐이었는데 자신의 운명은 능력 있는 남자에 의해서 보다 좋은 상황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3. 내 능력을 함 펼쳐봐?

생존의 관점에서 본 신데렐라는 많은 비판을 대상이 아닐 수 있습니다. 언니들의 학대 속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강점을 영리하게 그리고 최대한 이용해서 자신의 인생을 크게 바꾼 것일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학대를 일삼던 새엄마와 언니들을 용서합니다. 승자의 아량을 펼쳤습니다. 단순히 남자에게 잘 보이려 한 행동이 아니라 자기가 살아가기에 너무 힘든 하루하루에 한 줄기 빛이 바로 왕자가 개최한 성대한 파티였을 것입니다.

 

 

예쁘다는 것 그리고 무도회의 기회, 요술쟁이 할머니 능력을 이용한 꾸미기 그리고 자신의 댄스 실력과 치명적인 예쁜 미소, 그리고 일부러 유리 구두를 떨어뜨리는 마지막 상황까지 계획에 다 들어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 있어야 했습니다.

 

어느 것 하나라도 삐걱거리면 안 되는 미션 임파서블까지는 아니더라도 꽤 고난도의 미션을 잘 수행했다 볼 수 있습니다.신데렐라에 있어서 참으로 험난한 일생일대의 큰 승부처에서 좋은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콩쥐는 그러한 일이 다 주변의 도움으로 하늘과 땅의 보살핌으로 이루어집니다. 복을 타고난 경우이고 운이 엄청 좋은 인물이었지요. 허둥지둥 실수로 꽃신을 냇가에 떨어진 것을 길가는 개똥이가 아닌 원님이 보게 되는 우연까지 일어납니다.

콩쥐는 자신의 맡을 일에 대해 수동적으로 어떻게 해만 외치는 주인공에게 주변의 모든 이들이 도와주게 됩니다. 자신의 능력을 펼칠 기회가 없었던 것이고 그 능력이 자못 의심이 되는 상황입니다.

다른 이본(異本)에서는 하늘에서 내려온 검은 소가 비단옷과 비단신을 줍니다. 새언니의 구박이 두려워 서둘러 가던 중 비단신을 떨어뜨리고 원님이 아주 우연하게도 발견 연결되는 구조입니다.

4. 신데렐라의 성실함 (춘향전의 성춘향)

 

신데렐라는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끊임없는 언니들의 일거리도 묵묵히 다 수행을 하고 불평이 없이 쓰러질 때까지 일을 하였습니다. 악바리 근성일지 아니면 오기와 미움 그리고 복수의 다짐이었는지는 알 수 없어요.

맡은 일에 대해 성실하게 수행한 신데렐라는 분명 배울 점이 많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부당할 수 있는 일도 묵묵하게 성실히 수행해서 이를 지켜본 요술쟁이 할머니가 나타난 것일 수도 있구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어떠한 일에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는 오직 하늘의 뜻에 따른다는 말입니다. 그 성실함이 행운을 부르고 신데렐라의 치밀한 계획(?)과 시나리오로 해피엔딩이 이루어지지 않았을까요?

 

 

신데렐라가 지금까지 읽혀온 이유 중 하나가 춘향전에서도 나오는 이면적 주제로 배우는 신분 상승이라는 이야기로 끝을 맺습니다.

 

약간의 차이가 있는데요. 신데렐라는 앞서 말씀드렸듯 성실성과 탁월한 계획 그리고 그것을 수행한 여인이구요 왕자를 그리 사랑하였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춘향이는 이몽룡을 거부하다 나를 사랑해서 아직은 미완성인 이몽룡의 가능성에 자기의 전부를 건 여인입니다. 신데렐라보다는 승부사 기질이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새엄마와 언니들의 구박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변학도의 회유와 고문을 이겨낸 주체적 여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콩쥐보다 훨씬 더 사랑은 받은 이유를 딱히 많은 분들이 얘기를 못해도 이 지점이 우리 민중이 춘향이를 아끼는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5. 콩쥐 그리고 신데렐라의 남자 그리고 평강 공주

 

콩쥐와 신데렐라의 남자들은 한 눈에 반해서 결혼을 결심합니다. 얼마나 맘에 들었으면 운명이라고 느끼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싶지만 너무 섣부른 결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나마 신데렐라의 왕자는 그래도 몇 시간이라도 얘기도 하고 인연을 만들어 갔지만 콩쥐의 원님은 금사빠의 전형입니다. 또는 한 눈에도 알아 볼 수 있는 탁월한 관상을 볼 줄 아는 사람일 수도 있구요.

 

 

사람마다 다르고 판단이나 가치관이 다를 수 있지만 일단 그래도 대화라도 아니면 신데렐라의 왕자처럼 춤이라도 춰보고 결정을 해도 늦지 않았을텐데 말이죠.

 

지금의 결혼이라는 것은 어떨까요? 아무나 하지 못하는 일정한 조건이 남녀 모두에게 필요하다는 것이 무의식 속에 자리 잡고 이미 또아리까지 치는 시대가 아닐까 합니다.

애를 낳는 것은 더더군다나 선택받은 분들만 할 수 있는 것일 수도 있겠죠. 이미 다산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많은 부를 가진 사람만 할 수 있는 특권(?)일 수 있구요.

 

굳이 멋진 인물 순으로 평가하자면 콩쥐 → 신데렐라 → 춘향일 수 있는데요. (우리나라 뿐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여자가 남자를 잘 만나서 신분 상승하는 이야기는 흔히 볼 수 있고 지금도 영화로도 제작됩니다.) 우리 나라에는 엄청난 여성 인물이 있어요. 바로 평강공주입니다. 바보 온달에게 시집을 가는 선택을 하죠. 우량주 이몽룡을 선택하는 것은 그래도 납득이 가는데 바보에게 자신의 전부를 건다는 것은 ‘바보 짓’이죠. 그런데 하게 됩니다.

 

 

 

‘바보 온달’을 ‘온달 장군’으로 만든 것은 평강 공주가 다 했다고 해도 딴지를 것 분은 많이 없을 것입니다. 평강 공주는 자기 삶에 대한 주인인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비록 자기 남편이 전쟁에서 가슴 아픈 비참한

결말이 있다 하더라도 지난 삶을 돌아봤을 때 한 순간, 한 순간 행복했다고 제일 많이 여겼을 이는 콩쥐도 신데렐라도 아닌 평강 공주와 성춘향이었을 것입니다. 애틋함과 여운이 평강공주라는 케릭터에서 머뭅니다.

 


 

"국어의 키, 독서클럽"에서 준비한

「신데렐라」

줄거리 요약 흥미로우셨나요?

그러면 저희는 다음 포스팅에서

더욱 흥미롭고 유익한 주제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강의 성동구 논술!

"국어의 키, 독서클럽"입니다 :)

 

오늘은 '아빠가 아이에게 들려주는 리터러시' 라는

주제로 책 줄거리를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사건의 개요를 살피면서 함께 이야기의 포인트를 짚어볼 건데요~!

오늘은 책 ​「미운 아기 오리」​​ 입니다 !

그러면 지금부터 같이 읽어봅시다 !

아빠가 아이에게 들려주는 리터러시 upgrade

 

자기 부정, 못생김

 

미운 아기 오리 (feat 마당을 나온 암탉)

 

 

동화는 정답이 없습니다.

단지 우리 아이에게 생각을 그리게 하고

통찰을 배우고 익히게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1. 자기 부정 못생김

 

미운 아기오리는 남들보다 크고 다른 오리와 색깔이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오리들과 형제들에게 미움과 따돌림을 당합니다. 당연히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나봐.’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방황을 합니다. 다른 오리들과의 생김새의 ‘다름’에서 출발한 차이를 차별로 이것이 더 깊어져서 자존감이 약해지고 나중에는 가출을 결심하게 됩니다.

 

할머니 오리는 유난히 크고 못생긴 미운 오리를 보고 말합니다. “저 애는, 칠면조일 것이야. 그리고 헤엄을 못 칠거야. 얼른 버려.” 라고 합니다. 하지만 엄마는 미운 아기 오리가 헤엄을 친다는 이유 하나로 자신의 자식으로 인정을 하고 키워줍니다. 오리 어머니의 사랑과 보살핌으로 성장할 수 있었는데 주변의 따가운 시선이 너무 버거웠는지 미운 오리는 곧 무모한 가출을 결심하게 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미운 오리는 자기애가 강하고 충동적이고 무모한 결단이었지만 자기 삶에 주도적일 수 있습니다. 어머니께 꾸지람을 듣고 한 번쯤 가출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아이들은 많지만 실제로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것은 쉽지 않은 까닭입니다.

 

어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속해 있는 사회(학교, 직장, 친구 관계 등)를 떠나는 것을 몇 번이고 고민하다가고 자리를 박차고 자신이 있는 그 사회 관계를 단절하고 다른 집단으로 떠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아기 오리의 행동은 무모한 용기일 수도 있지만 내적 성숙과 역량이 있다면 기존 사회에서의 아기 오리의 부당한 따돌림과 차가운 시선을 한 방에 날려줄 공간의 변화, 이동은 삶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한 발짝 앞으로 디딜 수 있는 용기에 대해서는 아이들보다는 어른들이 배울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단, 미운 오리는 타인이 나를 싫어하는 지에 대해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삶에 있어 그렇게 중요한지 생각해 보고 그 집단에 나오는 적극적인 선택이 과연 옳은지에 대한 성찰이 행동 전에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온전히 사랑해주는 어미 오리에 대해 생각을 반드시 했어야 합니다.

 

 

2. 가출 결심 그리고 초심자의 행운과 불행

 

미운 아기 오리는 가출을 결심하고 실행하게 됩니다. 가출의 이유가 자기 부정과 주변의 구박이라는 이유라고 표면적인 이유이긴 합니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는 대상인 어머니에게 한 번 더 물어봐야 하지 않았을까요? 못생겼다는 놀림만으로 그곳을 떠난 다는 것에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그 행위에는 생각이 얕고 어린 무모함이 있습니다.

어리석은 행동이고 자기가 나갈 곳에 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 스스로 자신을 위험속으로 빠뜨리는 것입니다. 그래도 초심자의 행운이 있어 기러기가 따뜻하게 잠시 손을 내밀지만 마음이 따뜻한 그 기러기가 곧 총에 맞아 죽고 아기 오리도 곧 사냥개에게 죽을 수도 있는 위험에 빠집니다.

 

 

 

3. 자기 성숙의 밀도의 차이, 가출의 다른 의미

 

미운 아이 오리 vs 마당을 나온 암탉

 

비교 대상인 마당을 나온 암탉은 다릅니다. 그 암탉은 다른 이들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남들과 같은 외모였고 다른 이들처럼 항상 똑같은 삶의 반복이었죠.

 

 

 

생김새에 대한 고민도 서로를 헐뜯을 생각과 여유를 주지 않는 사육장에 한 공간을 차지하는 그저 그런 하루하루를 지낼 뿐이었습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병아리를 키우는 삶을 꿈꿨습니다. 한 개체가 다른 개체에게 도움이 되어 다시 온전한 개체를 만드는 고귀한 과정입니다. 어느날 이 닭은 일부로 사료를 거부합니다.

 

그리고 병들 들었다는 이유로 구덩이에 다른 병들고 죽은 닭들과 버려집니다. 다행히 깨어난 마당을 나온 암탉은 지금까지의 틀에 갖힌 삶, 평범한 삶, 편안한 삶, 의미 없는 삶에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간신히 목숨을 구한 마당을 나온 암탉은 스스로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납니다. 그리고 자신의 운명을 하나하나 만들어 갑니다.

 

 

 

미운 아기 오리와 마당을 나온 암탉, 둘 다 자기를 찾기 위한 여행을 떠나지만 그 시작이, 하나는 자기 자신의 정체성 부정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꿈을 위한 그리고 진정한 자기를 찾기 위한 여정이라는 것에서 큰 차이가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몰입과 자기 정체성 성숙의 밀도가 너무나 비교가 됩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이 미운 아기 오리였다면 분명 가출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기의 존재에 대해 탐구했으리라 봅니다. 그리고 자기가 원하는 삶이 그 어떤 형태였든 그 삶으로 온전히 한 발 한 발 발걸음을 이어나갔을 것입니다. 보다 넓은 세상을 꿈꿨다면 그 꿈을 위해 자기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 알았을 것입니다.

 

 

4. 아름답다는 기준이 있을까?

 

몸집이 크다 해서 그리고 색이 다르다 해서 미운 것일까요? 그것은 아시다시피 아름답고 못생기고의 구분이 아닌 단지 서로간의 차이 다름에 지나지 않는 기준입니다. 자본주의의 사회에서는 돈이 되는 것이면 무엇이든 만들고 생각하는 괴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름답고 추함의 개념과 소비를 불러 일으킬 적당한 이상적 아이돌 모델이 있어야만 자본주의는 성형 산업과 패션 그리고 각종 명품이 팔릴 수 있는 시스템이 완성이 됩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광고 텔레비전 유튜브 다 어떠한 아름다움의 기준이 있고 그것이 전부인양 그리고 그것이 셀럽의 남과 구별되는 이상향이라 떠들어 댑니다.

그래야 돈이 되고 팔리고 하는 체계이니까요. 자본은 일반 대중들에게 광고 속의 행복해 보이는 삶을 위해 마땅히 여러 상품을 구매해야 하는 것으로 기준을 만들어 버립니다.

우리는 멀쩡하게 태어났는데 단지 자본가가 만들어 놓은 소비 지향 아름다움 기준에 들지 못한다고 해서 자신을 미운 오리라고 쉽게 단정하게 됩니다. 눈만 뜨면 보이는 아름다운 지구에 몇 명 없는 미남과 미인들의 얼굴이 기준이 되고 하나의 표준이 되는 세상입니다.

 

 

 

미운오리에게 이웃과 형제가(못났다고 지적질) 현대에서는 각종 매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금만 시선을 핸드폰으로 옮겨도 근육질의 남성과 아름다운 여성이 등장하고 상품을 팔고 이러한 나를 따라오라고 합니다. 이것을 입어야만, 사용해야만, 발라야만, 뿌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낙오되는 미운 오리라고 얘기하는 자본주의 사회입니다.

 

 

5. 미운 오리에게 겨울이란?

 

미운 오리에게 가을이 지나 겨울을 맞습니다. 겨울은 모두에게 힘든 시기입니다. 야생에서는 자기 몸 하나 건사하는 것도 많은 힘이 듭니다. 약하고 어린 미운오리에게도 시련의 시간이고 죽을 수도 있었던 혹독한 시기였습니다. 그러한 힘든 시간이 지나고 나중에서야 봄을 맞게 되고 자신이 백조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주변 동물들이 아름답다고 칭찬을 합니다. 부러워도 하구요.

우리의 삶에서도 누구나 겨울이 있습니다. 외모로만 한정하면 어릴 때 아무것도 꾸미지 않아 순수함과 착함을 만끼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는 결정체인데 우리는 그 속을 보지 못하고 땟국물이 있는지 흙먼지가 있는지 콧물이 흐르는지 겉에 보이는 모습으로 판단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소비하는 나이가 들어도 세련되었다고 생각하지만 “미운 오리”딱지를 아직 떼지 못한 듯 보입니다. 비싼 옷이 아니어서, 내가 지금 사회적으로 위치를 잡지 못해서, 때로 나이가 들어서 살이 너무 쪄서의 외부 요건으로 자신의 외모를 판단 아직도 겨울을 보내고 있습니다.

 

 

 

겨울이 오면 반드시 봄이 와야 합니다.

그 봄은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자기 생각이 제일 중요합니다.

자기 ‘밉다’의 겨울이 있다면 ‘아름답다’의 봄도 있어야 합니다.

그 기준의 자기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타인이 결정해 줄 수도 있지만 그것은 완전한 아름다움이 아닙니다.

타인이 결코 내가 될 수 없듯이 타인이 정한 외모의 기준이 나의 기준이 될 수 없음입니다.

 

 

6. 현대에 있어 백조의 의미는?

 

현대에 있어 백조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또 다른 자본주의가 추구하는 즉 돈벌이가 되는 모습일까요? 아니면 진정한 자아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여러 개가 있을 수 있고 정답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자신의 생각에 타당한 근거가 있으면 다 맞다고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미운 아기 오리 이야기에서 책에 있는 내용을 온전히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고 여깁니다. 그냥 행복한 결말이라고 좋아하고 따르는 사람이 많을까요? 현대 사회에 실제의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별로 와 닿지 않은 이야기로 치부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단지, 내가 바라보는 미운 아기 오리가 나중에 백조가 되었고 처음에 못생겼다고 구박하는 주변인들에서 단지 나는 별로 변한 것이 없다고 느끼는데(오리와 색깔이 다른 흰색이고 등치가 큰 것)봄이 되자 나를 아름답다고 칭찬하는 정반대의 상황에서 어떠한 가치관으로 대처해야 할까하는 생각이 필요합니다.

 

예전 텔레비전 프로의 “TV는 사랑을 싣고”라는 프로가 있습니다. 거기에 나오는 분들은 아름다운 백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백조의 모습에 시선이 가는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미소 짓고 같이 안타까워 하고 때로 그 출연자와 같이 웃을 수 있는 것은 현재 아름다운 모습이 아닌 그의 미운 오리 시절의 때묻지 않은 순수함과 애틋함 그리고 촌스러움이 묻어나는 향기에 취해서가 아닐까합니다.

 

 

이야기에서 백조는 ‘남들이 부러워 하는 아름다움’입니다. 미운 아기 오리도 자기가 백조였음을 알고 행복해 하죠. 하지만 우리가 욕망하는 것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 우리가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끊없는 욕망이 항상 ‘백조’를 만드는 것은 아닐까합니다. 미운 아기 오리는 상대방에 의해 우쭐대고 기뻐했다면, 시간이 지나 다른 동물들이 자신의 백조 모습이 나쁘다고 하면 다시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워 할 수도 있구요.

 

 

7. 꼭 백조가 되었어야 했을까?

 

이야기의 다른 시선으로는 ‘꼭 미운 아기 오리가 백조가 되야 했을까?’에 대한 것입니다. 그냥 좀 큰 그리고 색깔이 다른 오리도 나쁘지 않을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백조냐 큰 오리냐가 아니라 진짜 나의 모습을 온전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미운 아기 오리가 현재의 늙음일 수 있고 백조가 젊은 시절을 의미할 수도 있을까요? 사람들은 젊었을 적을 그리워 합니다. 그렇다는 것은 지금 현재를 부정하는 것이구요. 그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젊음을 욕망할수록 현재의 자기의 모습을 미운 오리라고 여기지 않을까요?

 

젊음의 시절이 그리고 늙음의 현재가 모두 다 백조일 수도 있고 미운 오리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오늘 하루의 삶이 미운 오리일지 그리고 백조가 될지는 오직 자신에게 달려있고 만들어 가는 과정이 아닐까 합니다. 주변 이웃의 시선에 자본주의 잣대로 절대 자기 자신을 맡기면 안됩니다. 중요한 것이 오직 나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이 자신의 삶의 마감의 순간에 그의 모습이 비록 늙고 초라하고 힘이 없었지만 온전한 자기 삶을 살았고 의미 있는 가치에 희생하면서 마무리를 합니다. 백조의 삶보다 다소 초라하지만 세속적인 가치에서는 못생김이라 얘길 하겠지만 겉모습만이 아닌 아름다운 내면과 영혼을 볼 수 있는 시선을 다시금 일깨웠으면 합니다.

 

(백조가 된 미운 아기 오리는 외모는 백조일망정 다시 주변 백조의 못생겼다는 말과 다른 동물들의 험담에 신경을 쓰게 될 것입니다. 아직 내면은 미운 아기 오리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새끼를 가진 족제비에 의해 죽음을 당합니다. 아니 자기의 삶의 목표였던 한 생명의 낳아 기르고 밝은 미래를 안내했던 자기의 소명이 다 하는 시점에 당한 운명에 자기를 기꺼이 내어 줍니다. 닭장 뒤켠에서 족제비와 처음 만났을 때의 마당을 나온 암탉과 초록이를 만나 알에서부터 키우고 더 넓을 세상으로 보낸 위대한 엄마 암탉은 분명 어마어마한 내적 성숙을 이룬 후의 운명을 받아들임 자체입니다.

 

 

어떤 이들은 매일 같은 삶 닭장 안에 살다 남들과 같은 죽음을 맞이합니다.

어떤 이들은 자기를 원망하고 한탄하면서 살기도 합니다.

어떤 이들은 새로운 환경에 자기의 운명을 걸기도 합니다.

어떤 이들은 똑같이 살다 갑니다.

어떤 이들은 자기가 원하는 삶을 온전히 살다 기꺼이 타인을 위해 희생합니다.


 

 

 

"국어의 키, 독서클럽"에서 준비한

「미운 아기 오리」

줄거리 요약 흥미로우셨나요?

그러면 저희는 다음 포스팅에서

더욱 흥미롭고 유익한 주제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

 

 


+ Recent posts